손은 잡아주면서 사귀자는 말은 피하는 러닝크루 그녀, 왜 이럴까


📝 러닝크루에서 만나 사귄 지 두 달째인 33살 G군의 편지, 오늘은 이 얘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G군이 지금 느끼는 그 답답함, 예민한 게 아닙니다. 러닝 끝나고 손을 잡고 스트레칭을 도와주고, 카페에서 어깨에 기대는데, 정작 “만나볼래?”라는 한마디에는 확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 이건 관계가 애매한 게 아니라 한쪽만 편한 상태입니다.

러닝크루 모임 후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긴 30대 남성

밑밥만 뿌리는 강태공

이거 딱 낚시에서 밑밥만 계속 뿌리고 정작 낚싯대는 안 던지는 강태공이랑 똑같습니다. 물고기가 입질할 낌새를 보이는데도 챔질할 타이밍마다 “조금만 더 보자”며 미루기만 합니다. 밑밥은 계속 뿌려야 물고기가 안 떠나니까요. 정작 낚아 올릴 생각은 없으면서 말입니다.

H양도 지금 이 패턴 그대로입니다. G군을 안 좋아해서가 아니라, 확답 없이도 스킨십과 관심은 계속 받을 수 있는 지금 구조가 H양한테 너무 편한 것입니다. 이 편함을 G군이 먼저 깨지 않는 한, H양이 스스로 나서서 깰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한테 이름을 하나 붙여보면, ‘밑밥 정기구독자’ 정도가 딱 맞을 것 같습니다. 결제(확답)는 절대 안 하면서, 무료 체험(스킨십과 관심)만 최대한 길게 끌고 가는 유형입니다. 밑밥 정기구독자의 특징은 물고기가 떠나려는 낌새만 보이면 그제야 밑밥을 더 뿌린다는 것입니다. 낚아 올릴 생각은 여전히 없으면서 말이죠.

계산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러닝크루 정기 모임이 주 2회, 두 달이면 열여섯 번 넘게 만난 셈입니다. 그중 손을 안 잡거나 어깨를 안 기댄 날을 세는 게 더 빠를 겁니다. 스킨십 데이터는 열여섯 번어치 쌓였는데 확답은 0번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거리 두니까 오히려 매달리는 이유

G군이 서운해서 며칠 연락을 뜸하게 하니 H양이 오히려 먼저 연락을 자주 해왔다고 하셨는데, 이유를 밝혀드리겠습니다. 훈훈하게 말하면 “G군이 소중해서”겠지만, 진짜 이유는 이번 주말 마라톤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밑밥만 뿌려진 채 낚싯대는 던져지지 않은 강가 풍경

이 대목에서 하나만 따져보겠습니다. 손을 먼저 잡은 게 H양 잘못일까요, 확답을 미룬 게 잘못일까요. 아니면 거리를 두니 다시 매달리는 게 잘못일까요. 아무리 돌려봐도 답은 하나로 나오는데, 지금 이 관계에서는 그 답이 거꾸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H양이 할 법한 변명을 미리 대신 해보겠습니다. “러닝 후 스트레칭 도와주는 건 그냥 크루 문화지 사귀자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할 텐데, 그 논리라면 유독 G군한테만 매번 스트레칭을 부탁한 이유부터 설명이 안 됩니다. 편해서 하는 배려와 연인이 아니면 안 하는 배려는 다른 얘기니까요.

비율로 한번 따져보면, H양이 먼저 연락한 경우 중에 순수하게 안부만 물은 게 몇 번이었는지 세어보시길 바랍니다. 아마 대부분은 페이스메이커 부탁, 러닝화 추천, 대회 일정 공유였을 겁니다. 순수 안부 연락 비율이 10%도 안 된다면, 그건 관심이 아니라 용무입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저도 예전에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친하던 지인이 자기 일 있을 때만 딱 연락하고 평소엔 감감무소식이었는데, 그때 정신이 확 들더라고요. 필요할 때만 찾는 관계는 결국 그 필요가 사라지면 관계도 같이 사라진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G군, 만약 저라면 이 시점에서 뭘 했을지 시연해드릴게요. H양이 “페이스메이커 해줄 수 있어?” 하고 연락 오면, 저는 이렇게 답했을 겁니다 — “페이스메이커는 크루 다른 분한테도 부탁해봐, 나만 뛸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이게 세상에서 제일 쿨한 척인데, 사실 저도 답장 보내고 나서 3초 만에 후회했을 겁니다. 밀당이라는 게 당하는 쪽만 흔들리는 게 아니라 튕기는 쪽도 나름 심장이 쫄깃한 법이니까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시연이고, 실제로 그렇게 완벽하게 쿨한 사람은 흔치 않다는 것도 같이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다음번에 H양이 뭔가를 부탁하며 연락하면, 바로 도와주는 걸로 답하지 마시고 “우리 관계부터 정하고 나서 도와줄게”라고 딱 한 문장만 답해보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H양이 진지하게 다시 얘기를 꺼내면 정말 준비가 필요했던 거고, 여전히 다른 화제로 돌리면 그건 준비가 안 된 게 아니라 애초에 확답을 낼 생각 자체가 없는 겁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G군은 규정과 절차를 중시하는 편일 텐데, 이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확답 없이 계속 진행되는 관계는 근거 서류 없이 결재만 계속 미뤄지는 기안서와 다를 게 없습니다. 언제까지고 “검토 중”으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사실 이건 G군만의 얘기는 아닐 겁니다. 스킨십과 확답이 따로 노는 관계는 함께하는 활동(운동·모임·취미)이 자연스러울수록 더 자주 생깁니다 — 같이 있는 시간 자체가 이미 편해서, 정작 제일 중요한 확답 한마디를 미루기 쉬워지거든요. 이 글 읽으면서 ‘어 이거 나도 비슷한 적 있는데’ 싶으신 분들, 꽤 되실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딱 한 가지만 셀프로 체크해보시길 바랍니다. 최근 만난 횟수 대비, 그 사람이 관계를 명확히 하려는 시도를 몇 번이나 했는지 말입니다.

G군, 오늘 편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페이스 유지하시는 그 실력 그대로, 이 문제도 깔끔하게 정리하시길 바랍니다. 다음에 또 편하게 얘기 나누시죠 ㅡᴗ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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