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면 평화로운데 마음은 무너지는 연애, 계속 참아야 할까요
제 친구 하나는 초등학생 때 손을 못 들어서, 화장실 가고 싶은 걸 끝까지 참다가 결국 자리에서 사고를 냈던 적이 있습니다. 손 한 번 드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웠는지, 본인도 나중에 웃으면서 얘기하더군요. 심지어 그날 담임 선생님은 범인을 못 잡고 “누구니”만 세 번을 물었다고 합니다. 참는 데도 유통기한이 있는데, 그 친구는 그 기한을 몸으로 증명해버린 셈입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참는 건 문제를 없애는 게 아니라, 문제가 터지는 시점을 미루는 것뿐이라는 겁니다.
30살 대형마트 주임 민아 씨의 연애도 비슷한 모양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남자친구가 약속을 당일에 파기하고 무심하게 굴어도, 싫은 소리 한 번 못 하고 넘어갑니다. 그러면서 “이해심 많은 여자친구”라는 이름 아래 조금씩 자존감이 깎여나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티 내지 않는 걸 “이해심”이라고 부르는 건,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이해는 서운함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서운함을 겪고도 상대를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민아 씨가 지금 하고 있는 건 서운함 자체를 참는 것이지, 이해가 아닙니다.
손을 못 든 채로 참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결국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넘는 순간이 옵니다. 그 순간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터질 수도 있고, 혹은 겉으로는 티도 안 나게 그냥 마음이 조용히 무너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약속을 갑자기 취소하면 나도 서운해”라는 문장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게 정답이라는 건 아니지만,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 말 한마디는 관계를 깨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 분이 같은 정보를 가지고 관계를 이어가게 해주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지금 민아 씨 혼자만 서운함을 알고 있고, 남자친구는 그 서운함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참는 걸 그만두라는 게 아니라, 참아야 할 일과 말해야 할 일을 나눠보자는 겁니다. 매번 크게 화내지 않아도, 그때그때 작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쌓이는 양이 확 줄어듭니다. “이해심 많은 여자친구”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만점을 노릴 필요는 없습니다(응?).

다음번엔 손을 조금 더 일찍 들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