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엔 다정한데 특정 상황에서만 폭언하는 남친, 노력으로 고쳐질까요
제품에 결함이 있는데, 그 결함이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게 아니라 특정 조건에서만 발현된다고 해봅시다. 예를 들어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만, 혹은 특정 온도에서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이런 경우 제조사는 “사용자가 조심해서 다루면 안 터진다”고 하지 않습니다. 조건이 명확한 결함일수록 오히려 더 확실한 리콜 사유로 봅니다.
28살 학원 강사 지은 씨의 남자친구는 평소엔 젠틀하지만, 운전할 때나 내기 게임을 할 때처럼 특정 상황에서 거친 폭언과 폭력성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지은 씨는 이걸 “내 노력으로 고칠 수 있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정 조건에서만 폭력성이 나타난다는 건, 우연히 성격이 급한 게 아니라 본인도 그 조건에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평소의 다정함은 그 사람의 전체 모습 중 절반일 뿐, 나머지 절반을 지워주지 않습니다.
지은 씨가 갈등을 피하고 상황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성향 자체를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번만큼은 회피가 아니라 정확히 보는 게 먼저입니다.

한 가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상대의 분노 조절 문제는 지은 씨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영역이 아닙니다. 이건 상대 본인이 그 문제를 인식하고, 필요하다면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 영역입니다. “내가 더 잘하면 저 상황이 안 생길 거야”라는 생각은, 문제의 책임을 지은 씨 쪽으로 옮겨오는 것과 같습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만약 지은 씨의 친구가 똑같은 상황을 이야기한다면 지은 씨는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아마 “그건 네가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라고 먼저 말씀하실 겁니다.
이게 정답이라는 건 아니지만,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폭언이나 폭력적인 행동이 나온 상황과 정도를 구체적으로 기록해두는 것부터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물리적으로 거리를 둘 수 있는 방법(동승하지 않기, 그 자리를 피하기)을 먼저 만들어두시길 권합니다.
혼자 판단하기 어렵다면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 상담기관에 지금 상황을 그대로 이야기해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건 관계를 끝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은 씨가 안전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먼저 갖추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지은 씨가 지금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려 하신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필요한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