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트 통장 미납하고 취미템 사는 남자친구, 이 정도면 손절각일까
취미에 빠지면 원래 주변이 안 보이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취미가 문제인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진짜 문제는 취미가 아니라 순서다.
1년째 연애 중인 E씨(28)의 남자친구(32)는 커스텀 기계식 키보드와 휴대용 게임기에 빠져 주말마다 집 데이트만 고집한다. 초반 반년은 알콩달콩했다는데, 요즘은 스위치 윤활 소리만 들어도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고 한다.
동호회 활동을 해본 사람은 알 텐데, 회비를 안 내는 회원이 꼭 있다. 그런데 그 회원이 회비는 안 내면서 자기 장비는 최신형으로 맞춰 온다면, 총무 입장에선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직감한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에서 회비가 밀린 거다.
E씨와 남자친구는 매달 30만 원씩 데이트 통장에 넣기로 약속했다. 이번 달, 남자친구 차례에 입금이 안 됐다. 이유를 물으니 이랬다.
여기서 기대했다. 어떤 성의 있는 해결책이 나올까.
현실은 파스타였다.
요리를 잘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지금 필요한 건 청양고추가 아니라 입금 내역이다.
E씨는 지금 “취미병이 시간 지나면 고쳐질까”를 묻고 있는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건 병이 아니라 선택이다. 핀셋으로 스위치 하나하나 윤활하는 데 드는 시간을 환산하면 왕복 카페 데이트 한 번은 거뜬히 나온다. 그 시간과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매번 어디에 먼저 쓸지를 고르고 있는 거다.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취미 자체는 죄가 없다. 문제는 개인 소비를 먼저 두는 패턴이 공동 약속보다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번엔 파스타였지만, 다음엔 뭘로 넘어갈지 짐작이 간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만약 E씨가 데이트 통장 입금을 두 번 미루고, 대신 “내가 화장품 사줄게”로 넘어갔다면 남자친구는 순순히 넘어갔을까. 아마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라는 말이 먼저 나왔을 거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 논리가 거꾸로 적용되고 있다.
“오빠, 이번 달 통장 얘기랑 주말 데이트 얘기는 따로 하자. 요리 얘기는 다음에 하고, 이번 달 입금은 언제 할 거야?” 이렇게 두 개를 분리해서 물으면 상대가 화제를 돌릴 틈이 줄어든다. 취미를 그만두라는 요구가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라는 걸 명확히 하는 거다.
이게 정답이라는 건 아니고, 참고 정도로만 들었으면 한다. 다만 여기서 남자친구가 또다시 다른 화제(요리, 선물, 애교)로 넘어가려 한다면, 그건 취미의 문제가 아니라 대화를 회피하는 습관의 문제라고 보는 게 맞다.

고쳐질지 아닐지는 사실 이번 한 번으로는 알 수 없다. 다음 달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지, 그때 E씨가 이 글을 다시 떠올리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