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어졌는데 편한 친구로 지내자는 전남친, 재회 신호일까요
초등학생 때 피아노 학원에서 쓰던 건반 덮개 천을, 목도리인 줄 알고 목에 두르고 학교에 간 적이 있다. 나름 예쁘다고 생각해서 하루 종일 자랑스럽게 하고 다녔는데, 짝꿍이 “그거 피아노 덮개 아니야?” 하는 순간 얼굴이 새빨개졌다. 혼자 착각해서 좋아하다가, 진실을 알고 나서야 민망함이 몰려온 거다.
26살 새내기 직장인 하은 씨도 지금 비슷한 착각 속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별 후 전남친이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자”고 제안한 걸, 재회의 신호로 받아들여 일상 카톡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여기서 냉정하게 짚어야 할 게 있다.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자”는 말은 재회를 완곡하게 표현한 게 아니라, 대체로 그 말 그대로의 뜻이다. 이별을 통보하면서도 관계를 완전히 끊고 싶지는 않다는, 상대의 편의를 위한 제안일 확률이 훨씬 높다.
목도리인 줄 알았던 게 사실 피아노 덮개였던 것처럼, 하은 씨가 재회 신호라고 믿고 있는 그 말은 원래부터 다른 용도였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짝꿍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본인이 그걸 모른다는 거다.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하은 씨가 정이 많고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라 이 관계를 쉽게 끊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작은 희망의 끈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정작 새로운 관계로 넘어갈 준비는 계속 미뤄진다.
전남친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역할을 계속하다 보면, 정작 그 사람은 하은 씨에게 편한 상담자 자리를 내어주는 것 이상은 바라지 않을 수 있다. 24시간 무료 상담 콜센터를 자처하고 있는데, 정작 그쪽은 유료 전환할 생각이 전혀 없는 셈이다. 그 자리는 연인 자리와는 다르다.
당장 연락을 완전히 끊으라는 게 아니라, 매일 이어지던 일상 카톡부터 서서히 줄여보시길 권한다. 이게 정답이라는 건 아니지만, 참고로 말씀드리면 거리를 두고 나서야 이게 재회의 여지였는지, 아니면 그냥 습관이었는지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목도리는 결국 목도리가 아니었다. 일찍 알수록 덜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