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해야만 아는 사랑이 진짜인가요, 센스만 시험하다 생긴 오해
입대하기 전날, 논산훈련소 앞 갈비집에서 마지막 만찬이라고 잔뜩 먹은 적이 있다. 어차피 훈련소 들어가면 못 먹을 거라는 생각에 평소보다 훨씬 과하게 시켰는데, 다음 날 훈련소 첫날을 화장실에서 거의 다 보냈다. 기대가 클수록 탈도 크게 나는 법이다.
28살 플로리스트 지유 씨도 비슷한 걸 겪었다. 1주년 기념일, 원하는 게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고 남자친구의 센스를 시험했다.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지유 씨는 그걸 애정 부족으로 받아들이며 혼자 상처받았다.
지유 씨는 말보다 센스를 더 신뢰하는 사람이다. 대놓고 서운함을 말하는 게 자존심 상한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다. 기준을 알려주지 않은 채로 시험을 보게 하고, 통과 못 하면 그때 실망한다. 이건 시험이 아니라 채점 기준을 숨긴 시험이다.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자기가 뭘 놓쳤는지조차 모른 채로 “센스 없는 사람”이 된다. 억울할 만하다. 공부는 하나도 안 시켜놓고 시험만 보게 한 다음, 점수 나쁘다고 혼내는 셈이다. 이런 시험에서 만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역지사지로 가보면, 지유 씨가 남자친구의 기념일에 아무 힌트 없이 완벽한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면 어떨까. 아마 부담스럽고 억울할 거다. 그런데 지금 지유 씨가 남자친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게 정확히 그거다.
진짜 사랑이 말 없이도 통해야 한다는 기준은, 사실 두 사람 사이에 얼마나 대화가 쌓였는지에 달려 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통하는 커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말로 맞춰가다가 나중에서야 말 안 해도 아는 사이가 된다.
“이번엔 이런 쪽으로 좋아할 것 같아” 정도의 힌트 하나면 충분하다. 이게 정답이라는 건 아니지만, 참고로 말씀드리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서운해할 확률보다는 훨씬 낮은 확률이다. 배탈 나기 전날, 갈비집 사장님이 “손님, 이 이상은 위험합니다”라고 한마디만 해줬어도 다음 날이 훨씬 평화로웠을 거다(응?).

다음 기념일엔 배 안 아프게, 힌트 하나 정도는 흘려두시길.